닐 게이먼의 조언
닐 게이먼에 대해 아시나요? 최고의 SF 작가들에게 주는 휴고상을 여러 번 수상한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판타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드라마 닥터후의 시즌 6 가운데 4번째 에피소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많은 팬들이 이 작품을 시즌 6 최고의 각본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닐 게이먼이 유니버스티 아트 대학교 졸업생들을 상대로 축사했던 글을 읽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글 쓰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해당 글을 공유하오니, 많은 분들이 영감을 얻고 동기부여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그의 졸업 연설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닐 게이먼 이야기
뒤돌아보면, 저는 범상치 않게 살았습니다. 그걸 경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경력은 일종의 직업적 계획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 저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가장 비슷한 건 제가 열다섯 살 때쯤 하고 싶은 것을 몽땅 적어놓은 목록이었습니다. 저는 성인 소설, 아동 도서, 만화책, 영화 시나리오, 음반, 오디오 북, <닥터후> 시리즈물 등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에게는 경력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냥 목록에 있는 다음 일을 하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시작할 때 알았으면 했던 것들 전부와, 돌아보니 그때 알았을 만한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제가 가진, 그러나 저는 전혀 따르지 못했던 가장 괜찮은 조언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여러분이 예술 쪽 직업을 시작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좋은 일입니다.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규칙을 알고, 가능한 게 뭐고 불가능한 게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예술 분야에서 가능하고 불가능한 것에 대한 규칙은, 가능성을 뛰어넘음으로써 그것의 한계를 시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듭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면, 하기가 더욱 쉽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전에 그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 다른 사람이 그 특정한 것을 다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을 만들지는 못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만약 여러분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이 시점에 무엇을 할 것인지 안다면, 가서 하십시오. 듣기보다 훨씬 어려울 수도 있고, 가끔은 결국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쉬울 수도 있습니다.
보통 여러분들이 원하는 곳에 다다르기 전에 해둘 일들이 몇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화책, 소설, 기사, 영화 대본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되었지요. 기자들은 질문이 허용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서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데다가, 써야 할 필요가 있고 잘 써야 하는 것들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활기차게, 가끔은 악조건하에서, 그리고 시간을 어기지 않고 쓰는 것을 배우는 대가로 돈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방법이 분명할 때도 있고, 가끔은 옳은 것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이는 먹고 사는 것, 부채를 갚는 것, 일자리를 구하는 것, 성취한 것에 안주하는 것과 목표와 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효과가 있었던 것은 내가 되고 싶은 위치를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상상을 했는데, 괜찮은 책이나 만화책, 드라마를 집필해서 글로 벌어먹고 사는 것이었죠. 그걸 산이라고 상상하면서요. 아주 먼 산이요. 그것이 바로 저의 목표였습니다.
그 산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한, 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무엇을 할지 확실히 모를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것이 저를 그 산을 향해 가게 하는가, 아니면 그 산에서 멀어지게 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잡지사의 편집자 일자리를 거절했습니다. 돈도 적당히 벌기에 좋은 일자리로 매력적이긴 했지만 저로서는 그런 일들이 그 산에서 멀어지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일자리 제의가 좀 더 일찍 들어왔었더라면, 저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제가 있던 곳보다 그 일자리들이 그 산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글을 씀으로써 글 쓰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모험처럼 느껴지면 하려고 했고, 일처럼 느껴지면 그만두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것은 삶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여러분이 시작할 때, 실패의 문제에 잘 대처해야 합니다. 비판에 쉽게 동요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프로젝트가 다 살아남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프리랜서의 삶, 예술 계통의 삶은, 가끔 어느 외딴 섬에서 병 속에 메시지를 넣어두고, 누군가가 여러분의 병들 가운데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열어서 메시지를 읽고 병 속에 무언가를 넣은 후 그 병이 밀려와서 여러분에게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인정이나 수수료, 돈, 아니면 사랑 같은 것이겠죠.
여러분들은 결국 다시 돌아오는 모든 병들을 위해 수많은 것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패의 문제는 실망, 절망, 배고픔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고, 당장 일어나기를 원하는데 일이 틀어져 버립니다. 제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썼던 저널리즘 관련 책으로, 이미 선급금으로 전기 타자기를 구입하게 해 준 제 첫 번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야 합니다. 그 책은 저에게 많은 돈을 벌어 주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 출판사가 초판이 다 팔리고 재판을 찍지 않는 시기 사이에, 그리고 저작권료가 지급되기 전에 강제 채무청산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됐을 것입니다. 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지요. 아직 제겐 전기 타자기도 있었고 한두 달 정도 집세를 낼 만한 돈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어떻게든 앞으로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쓰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가진 건 아무 것도 없겠지요. 하지만 자부심을 느끼는 일을 한다면 돈을 벌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 일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이따금 저는 그 규칙을 잊어버리는데, 그럴 때마다 우주가 저를 세게 걷어차며 상기시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게 문제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단지 돈 때문에 했던 일은 쓰라린 경험을 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대개는 돈을 버는 것으로 끝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신이 나서 했고 현실로 존재하는 걸 보고 싶어 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절대 실망하지 않았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 보낸 시간을 후회해 본 적도 없습니다.
실패의 문제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문제점은 아무도 그것들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경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힘듭니다. 성공의 문제는 그것들이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운이 따르면 성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모든 것에 “예”라고 말하는 것을 멈출 때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바다 속에 던졌던 병들이 모두 되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아니”라고 말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저는 동료들과 친구들, 그리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들 중 몇몇 사람이 얼마나 불행한지 봤습니다. 그들이 늘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는 세상을 이제 더는 마음에 그려보지 못한다고 털어놓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지금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 매달 일정 액수의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자신들에게 중요한 것들, 자신들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여하한 실패의 문제처럼 커다란 비극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성공의 가장 큰 문제는,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민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제가 직업적으로 이메일에 답장을 쓰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고 깨달은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메일로 답장 쓰는 일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글 쓰는 비중이 더 늘게 되면서 저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저는 여러분들이 실수를 하길 바랍니다. 실수를 한다는 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수 그 자체로 유익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편지에서 캐롤라인(Caroline)의 철자를 잘못 썼는데, a와 o의 순서를 바꾸어 쓰고는 코렐라인(Coraline)이 진짜 이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육을 받고 있든, 음악가든 사진사든, 순수 예술가든, 만화가든, 작가든, 댄서든, 가수든, 디자이너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여러분에게는 독특한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여러분들에게는 예술을 창작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와 제가 알아온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구원자였습니다. 궁극적인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시기는 무난히 지나가게 하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게 해 줍니다.
삶은 가끔 힘이 듭니다. 인생, 사랑, 사업, 우정, 건강 등에 있어서, 그리고 살면서 일이 잘못될 수도 있는 다른 모든 면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기도 합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할 일입니다.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정말입니다. 남편이 정치인과 눈이 맞아 달아났습니까?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다리가 으스러지고 그런 다음 돌연변이 보아뱀에게 먹혔나요?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국세청이 여러분을 추적하나요?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고양이가 분노를 폭발했나요?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인터넷상에서 누군가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바보 같다거나 나쁘다거나 전에 다 누가 했던 거라고 생각합니까?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아마도 어떻게든 일은 잘 풀릴 것이며, 결국 시간이 흐르면 상처도 아물 것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잘하는 것만 하십시오.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좋지 않은 날에도, 좋은 날에도 작품을 만드세요.
그리고 다섯 번째로, 하는 김에 여러분의 작품을 만드세요. 여러분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시작할 때는 모방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모방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 목소리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린 후에야 비로소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되니까요.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없는, 여러분에게만 있는 한 가지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 마음, 이야기, 꿈 같은 것이죠. 그러므로 오직 여러분만 할 수 있는 것처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만들어내고, 놀고, 춤추면서 살아가십시오.
그것을 느끼는 순간, 아마도 여러분은 나체로 거리를 걷고, 가슴과 마음속, 내부에 존재하는 아주 많은 것을 노출하며, 자신을 아주 많이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아마도 여러분이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최근에 자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방법을 저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녀에게 그녀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 척해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일을 하는 척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인 척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녀는 이런 취지로 스튜디오 벽에 게시물을 붙였는데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혜로워지세요. 이 세상에는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지혜로워질 수 없다면, 지혜로운 사람인 척이라도 하시고, 지혜로운 사람이 하듯 행동하세요. 자, 이제 가 서 흥미로운 실수, 경이로운 실수, 통쾌하고 기상천외한 실수를 저지르세요. 규칙을 깨세요.
여러분이 이곳에 있어 더욱 흥미진진한 세상을 만드세요. 훌륭한 작품을 만드세요.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상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한 법칙 (0) | 2022.09.24 |
---|---|
소설에 꼭 들어가야 할 요소 (0) | 2022.09.12 |
스토리의 소재를 찾는 방법 (0) | 2022.09.05 |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을 설정하는 방법 (0) | 2022.09.03 |
내가 잘하는 일인가? 좋아하는 일인가? (0) | 2022.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