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면서 평론가로도 유명한 오쓰카 에이지는 작법에 대한 연구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작가의 권위 의식을 내세우는, 소위 말하는 잘난 척하는 작가들을 곱게 보지 않으며 그래서인지 특별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의견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방법만 배우면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내세우는 그는, 여러 작법서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문학교에서 소설 작법 강좌도 진행했는데, 방법론만 알려주면 학생들이 굉장히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 오는 경우가 많아 놀랐었다고도 합니다.
그의 작법론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도작을 통한 소설 만들기입니다. 도작이라고 표현하면 조금 어색한데, 이보다는 ‘레퍼런스를 참고하여 소설 구조를 익힌다’가 더욱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즉, 학생들에게 한 작가의 작품을 요약하게 한 후, 그 작품 플롯을 따라 자신의 소설을 만들어 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추천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류였습니다. 다른 작가들보다도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참고했을 때 학생들의 작품 수준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것이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 이야기의 구조를 추출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무라카미 류의 작품 중 하나인 <코인로커 베이비스>를 예로 들어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음은 코인로커 베이비스의 줄거리다. 오쓰카 에이지의 저서 <이야기 체조>에 나온 <코인로커 베이비스> 줄거리를 다시 정리하고 수정한 것이다.
코인로커 베이비스
무더운 여름, 코인로커 안에 아기 울음이 터진다. 기쿠와 하시는 코인로커 안에 버려졌다. 두 아이는 고아원에서 만나고, 어린 시절 정신병원에서 받은 치료(인공적인 심장 소리를 듣는 치료)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고 여긴다.
이후 두 아이는 다른 부부에게 입양되고 형제처럼 자란다. 그곳에서 기쿠는 ‘다투라’라는 초강력 살인 흥분제를 알게 된다. 고등학교 입학 후 하시는 어머니를 찾고, 또 가수가 되고 싶어 도쿄로 떠난다. 기쿠도 하시를 찾으러 떠났다가 미소녀 아네모네를 만난다. 이후 기쿠는 폐허가 된 섬에서 트랜스젠더가 된 하시를 만난다.
폐허가 된 섬에서 둘의 삶은 갈라진다. 기쿠는 아네모네와 살다가 우연히 ‘다투라’의 소식을 듣고 아네모네와 함께 다쿠라를 찾기로 결심한다. 하시는 신인 가수로 성공하고 연상의 매니저 니바와 사랑에 빠진다.
크리스마스 날, 하시는 어머니를 만나지만 거기엔 있는 건 기쿠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하시를 도우러 온 기쿠는 친어머니를 만나지만, 어머니를 향해 총을 쏘고 만다. 기쿠는 소년형무소에 가고 그곳에서 심장 소리를 떠올리며 자신을 해방하고 어머니를 이해한다. 한편 기쿠의 연인이었던 아네모네는 기쿠를 쫓아 하코다테로 떠난다.
한편 하시는 니바와 결혼하는데, 이후 그의 상태가 이상해진다. 가수로서 더 큰 성공을 하려고 스스로 혀를 자른다. 목소리가 바뀌면서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마치지만 하시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기쿠는 형무소에서 항해 실습을 나가고, 그곳에서 친구가 일으킨 폭동을 틈타 탈주한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온 아네모네와 함께 다투라를 찾으러 떠난다.
하시는 자기가 미쳤다는 걸 알게 되고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임신한 니바를 살해하고 만다.
한편 다투라를 손에 넣은 기쿠와 아네모네는 모든 것을 새하얗게 만들기 위해 도쿄로 달려간다.
하시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울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하시는 심장 소리를 찾아내고 새로운 목소리로 첫울음을 터뜨린다.
이 이야기에는 기쿠와 하시라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두 아이는 코인로커에 버려진 채로 세상에 태어났다. 기묘한 탄생 설정입니다.
두 명의 주인공은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목표보다는 욕망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싶습니다. 하시는 어릴 적 정신병원에서 심장 소리를 듣는 치료를 받았으며, 가수를 꿈꾸고 목소리에 집착합니다. 기쿠는 어릴 적 알게 된 ‘다투라’라는 환각물질에 집착합니다.
이런 설정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각기 다른 두 주인공의 삶을 각각 그립니다. 두 개의 곡선이 변곡을 이루며 교차하기도 하고 평행을 그리기도 하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양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두 주인공은 만나고 서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플롯을 따라 이야기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오쓰카 에이지가 내준 이 과제에 한 학생은 이런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 학생이 구상한 소설을 다시 짧게 정리하고 요약한 것입니다.
코인로커 베이비스를 참고하여 구상한 소설
아기가 들어 있는 두 개의 캡슐이 처리장에 들어온다. 캡슐에 버려진 두 아이의 이름은 쿠온과 토와로 뛰어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두 아이를 맡은 노부부는 초능력이 위험하다고 여겨 두 아이의 능력을 봉인시킨다.
성장한 토와는 집을 떠나고, 어느날 능력의 봉인이 풀린다. 토와에게 관심을 가진 사업가 세나가 그를 데려간다. 토와는 세나 밑에서 그들을 위해 능력을 사용한다.
한편 쿠온 역시 토와를 찾으러 떠난다. 쿠온은 아스카라는 소녀를 만나고 이 세상 어딘가에 강력한 힘을 지닌 ‘판도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토와는 유명해지고, 쿠온은 토와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다. 쿠온은 토와를 데려가나 하나 세나에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능력의 봉인이 풀린 쿠온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만다.
쿠온은 무법지대로 쫓겨나고, 토와는 여전히 세나 밑에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덕분에 세나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지만, 토와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친다.
무법지대에서 살아남은 쿠온 역시 능력을 계속 사용하다가 몸에 무리가 오고 만다. 두 사람이 가진 능력은 양날의 검이었던 것이다.
아스카의 도움으로 쿠온은 살아나고, 그녀와 함께 판도라를 찾으러 떠난다. 판도라를 얻은 쿠온은 다시 토와를 찾으러 가지만 토와의 정신은 이미 붕괴한 상태였다.
토와는 세나를 비롯해 주변의 사람들을 다 죽이며 폭주하고 있었다. 쿠온은 판도라를 활용하여 토와의 능력을 비롯해 모든 능력을 파괴시킨다.
결국 쿠온과 토와는 함께 쓰러진다.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능력을 사용하기로 한다. 폐허가 된 곳에 희망을 주기를 바라며.
학생이 만든 플롯인데, 레퍼런스를 따라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만들 수 있다고 제시하는 듯합니다. 게다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구조를 따랐지만 결말의 분위기는 좀 더 희망적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작품을 레퍼런스 삼아 충분히 소설을 따라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연습은 플롯의 구조를 체화하기에 좋은 공부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번 글을 쓰면서 플롯의 구조를 조금이나마 더 익혔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이 만든 줄거리를 다시 요약해서 정리했을 뿐이지만,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내 머리에도 이 작품의 플롯 구조가 얼추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업만 해도 그럴진대, 직접 다른 사람의 소설을 레퍼런스로 삼아 이야기를 써본다면 훨씬 더 좋은 훈련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왕이면 자신이 재미있게 봤던 영화나 소설을 레퍼런스로 삼는 게 플롯 익히기에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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