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이름 짓기
시나리오 작업을 하든, 웹소설 작업을 하든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라면 반드시 맞이하게 되는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등장인물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작가가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첫 설정입니다. 이름부터 캐릭터의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혹은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이름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가 고민입니다. 소설 작업을 아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공감할 것입니다. 특히나 등장인물의 참여도가 높은 인물, 예를 들어 주인공이라든가 흑막의 정체라든가, 중요한 조연일 경우에는 더욱 신경 쓰입니다. 그럴듯한 이름을 짓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캐릭터의 이름에는 그것을 듣는 순간 암시하거나 느껴지는 힘이 있기 마련입니다. 소설 <호빗>에 등장하는 ‘골룸’과 ‘빌보 배긴스’라는 이름에서는 각기 다른 것이 느껴집니다. 그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혹은 난쟁이족인지 엘프인지가 이름에서부터 어느 정도 판단되는 것입니다.
국내 소설이라면 이름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또 다릅니다. 특히나 남성 캐릭터의 경우에는 이름이 외자인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역시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최석균’이라는 이름과 ‘정수현’이란 이름 중 어느 이름이 주인공과 더 잘 어울리나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발음, 내적인 의미, 사회적으로 흔한 이름 등 다양한 이유들이 우리 안에서 작용을 해서 느낌을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 짓는 게 쉽지 않고, 작가마다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이름 짓기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판타지 작업물과 현대 소설물에 따라서도 이름 짓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여러 원칙 가운데서도 제가 공감하고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몇 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름은 다른 인물과 헷갈리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헷갈리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소설의 내용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나 외국 소설을 읽을때면 더욱 많이 느낍니다.
예를 들어 키구와 구토라는 이름은 분명 다르지만, 이런 이름이 등장인물인 소설을 읽다 보면 키구가 쿠토였는지, 쿠토가 키구였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비슷한 발음이 들어간 것도 문제인데, 음절이 같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왕이면 확실히 구분이 될 수 있게끔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주요 인물일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2. 최소한의 의미를 담아 본다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이름을 지을 때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악역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기적’이란 단어를 모티프로 해서 ‘이기중’이라고 짓는 것처럼 드러내 놓고 지어볼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선 ‘이지안’이란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를 지(至)에 평안할 안(安)이 들어간 이 이름의 뜻은 ‘평안함에 이르다’입니다. 주인공의 상황과는 역지사지 형태로 지어진 이름인데, 이 영화는 이지안이 평안한 삶을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를 궁금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드라마 포스터에서도 이런 말이 등장합니다. ‘지안, 평안함에 이르렀니?’
3. 입에 달라붙으면 좋다
불리기 쉬운 이름이 이왕이면 좋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불렀을 때 발음하기가 너무 어렵다면 쉽게 말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름을 만들고 스스로 그 이름을 중얼거리다 보면 입에 잘 달라붙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느껴질 것입니다.
4. 너무 어려운 이름은 짓지 않는다.
김영하 작가는 이름에 지을 때 너무 독특하거나 특이한 이름은 피한다고 합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쉽게 마주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경규 감독이 만든 영화 <복수혈전>에는 ‘마태호’라는 악당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마태호라는 이름은 너무나 생소하고 어색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입니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이 그의 이름이 불린 때마다 영화관 안에서 빵 터졌다고 합니다.
심각하게 이름이 불리는 순간에조차 ‘마태호’라는 소리를 들으면 웃음부터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름 짓는 것도 당연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5.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앞에선 최소한의 의미를 부여해 보라고 말했는데, 이번엔 그와 반대로 그렇다고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넣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이름이 캐릭터의 모습과 잘 떨어지는 게 중요한데, 그것을 잊고 너무 많은 의미를 넣으려다 보면 캐릭터의 이름이 산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름이 담긴 의미, 즉 한자의 뜻과 같은 내적인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외적으로 느껴지는 의미도 중요합니다. 이름이 불리는 소리와 캐릭터의 이미지가 잘 맞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원칙들을 생각하면서 캐릭터에 어울릴 만한 이름을 여러 개 붙여 보고 결국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때론 처음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에 지은 이름 대신 이후에 만든 이름을 붙였을 때 그 캐릭터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면, 그 이름이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이름인 것입니다. 자기 옷을 입은 것마냥 캐릭터가 느껴진다면 성공입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이름 짓기에 효과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단어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불리는지 찾아보는 것입니다.
가령 ‘이슬’이란 단어는 라틴어로는 ‘로스(ros)’라 불리고, 러시아어로는 ‘라싸(poca)’, 이탈리아어로는 ‘루지아다(rugiada)’라 불립니다. 이런 단어들을 활용하면서 캐릭터에 어울릴 만한 이름을 붙여볼 수 있습니다.
이슬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을 한국말로 발음할 때와 외국어로 발음할 때 느껴지는 뉘앙스는 꽤 다릅니다. 이런 점을 활용해서 단어의 내적인 의미와 외적인 느낌을 동시에 캐릭터에게 선사하는 것입니다. 캐릭터 이름을 만들기가 곤혹스러울 때면 이 방법이 꽤나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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